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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디북]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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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핸디북] 생명나무
원제 :
부제 :
저자 : 위트니스 리
발행일 : 2011.07.28
페이지/판형/커버 : 335 Page / 4-6판 / 소프트커버
판매가 : 7,000원
회원가 : 6,300원 (10%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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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나무
위트니스 리
 

서문

이 책은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1965년 여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전하신 메시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차례
1장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길     9
2장   두 나무의 근원과 그 완결     31
3장   요한복음에 있는 생명나무     49
4장   주의 집의 살진 것     69
5장   생명나무의 열매     89
6장   변화를 위한 생명나무     115
7장   어떻게 마지막 아담이 우리 안에서 생명나무가 되시는가     133
8장   어떻게 몸과 군대와 하나님의 처소가 나타나게 되었는가     155
9장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여시는 그리스도     175
10장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나무의 성장으로 이루어짐     195
11장   말씀을 통하여 생명나무를 누리는 법     215
12장   기도를 통하여 생명나무를 누리는 법     239
13장   생명나무를 체험하기 위해 영 안에서 가난하게 되고 마음이 순수하게 될 필요성     257
14장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성취됨     283
15장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반사하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편지들     301
16장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가 실현됨     319

 
1장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길
성경: 창 2:7-9, 요 1:4, 6:35, 57, 63, 4:14, 24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건축은 모두 생명나무에 달려 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다.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분의 권위를 사람에게 위임하셨다(창 1:26). 형상은 표현을 뜻한다. 당신의 형상의 어떤 면이 곧 당신 자신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을 이 우주 안에서와 이 땅 위에서 그분 자신의 표현으로 삼고자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감추어져 계시고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그분은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고자 하는 마음의 갈망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단번에 많은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시고 오직 한 사람만을 창조하셨다. 이 한 사람의 자손들은 모두 이 한 사람 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그분의 형상에 따라 하나의 단체적인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이요 표현이다.
왜 하나님은 그분의 권위를 사람에게 위임하셨는가? 하나님의 목적은 그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 목적은 그분의 대적으로 인하여 크게 좌절되었다. 하나님께는 온 우주와 이 땅 위에 하나의 대적이 있으시다. 이 대적은 땅을 하나님의 손에서 탈취하고 강탈해 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기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셔야 했다. 이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권위를 사람에게 위임하셨는데, 이는 사람이 그분의 표현이 될 뿐 아니라 또한 그분의 대표가 되어 이 땅 위에서 그분의 원수를 처리하기 위한 바로 그 권위로서 그분을 대표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권위를 주신 목적은 아담이 이 땅을 다스리고 특히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26절) 정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암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기는 것들의 몸을 입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기는 것들의 머리이며 하나님의 원수인 뱀이 기어들어왔다. 창세기 3장에 있는 뱀과 누가복음 1장에 있는 사악하고 더럽고 악한 영들을 대표하는 전갈은 모두 기는 생물들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의 권위를 위탁하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능력뿐만 아니라 온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권위 또한 갖도록 하셨다. 그것은 땅이 거역 안에 있어 왔으므로 이 거역의 땅이 정복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경 66권 전체에는 언제나 이 두 면이 있다. 하나님의 뜻의 긍정적인 것을 이루는 면은 단체적인 한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고, 부정적인 것을 처리하는 면은 이 단체적인 한 사람을 통하여 그분의 원수 사탄을 처리하는 일이다. 성경의 끝 부분에는 새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한 성(城)이 나온다(계 21:2). 이 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표현되고(계 21:11, 4:3), 하나님의 권위가 행사된다(22:5, 21:24-26). 이 성이 바로 하나님의 표현이요 대표이다.
 
생명나무를 먹음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은 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고 그 뜻을 이루는 길은 없다. 그 길은 창세기 2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 그 길인가? 그 길은 바로 생명나무이다(9절). ‘형상’과 ‘다스림’(권위)이란 단어들이 계시된 후에, 창세기 2장에서는 ‘생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창조된 인간들로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나를 사진에 담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진은 생명이 없이 단지 나의 어떤 형상만을 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당신 안에 살아 계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살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 이 생명나무에 나타나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표하는 권위의 문제도 이 생명나무에 달려 있다. 당신 속에 생명나무가 없다면,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당신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분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목적인 그분의 표현과 대표, 이 둘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셔야 한다. 하나님의 표현과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이 필요하다.
전세계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많은 천연적인 관념들을 가진 많은 종교들이 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창조자이시라는 것과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창조자로서 하나님은 너무도 위대하고, 너무도 높고, 너무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반면에, 우리는 너무도 미미하고 낮다. 우리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창조자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드려야 한다. 나는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상고해 보라고 당신에게 청하고 싶다. 하나님은 “아담아, 너는 나의 미미한 피조물에 불과하며 나는 너의 위대한 창조자임을 명심하라. 언제나 나는 보좌 위에 있고 너는 항상 엎드려 나를 경배해야 한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창세기에는 이런 기록이 없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다음에 그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명이 나열된 목록표를 주지 않으셨다. 그것은 타락한 후에 이루어진 모세의 일이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른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율법은 출애굽기 20장에서야 언급되고 있으며 창세기 2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을 대하시는 첫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하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어떤 것이 처음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원칙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최초의 언급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생명나무 앞에 놓으시고 아담에게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이르신 것이다(16-17절).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행함의 문제에 있지 않고 먹음의 문제에 있다. 사람이 옳게 잘 먹으면 그 사람은 올바를 것이다.
이 생명나무는 곧 우리의 생명이 되기 위한, 그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생명나무는 삼일 하나님, 즉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요, 그 영이신 아들이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없었을지 모르나, 우리가 구원받고 부흥된 후에는 그 즉시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선한 일을 도모하며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교회에 가기로’ 결심한다. 천연적인 관념에서 유발된 이러한 생각들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께 종교적이고 형식적으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먹는 데 있다. 우리는 주님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시는 첫 그림은 일하는 그림이 아니라 먹는 그림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음식의 형태로 제시하셨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말한다(요 1:1, 4). 어느 날 그분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사람을 먹인 기적을 행하셨다(6:9-13).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을 그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분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6:15). 그 후에 그분은 그분께서 오신 것은 밖으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다(35, 57절). 그분의 오심은 우리가 그분을 먹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가에 착념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다만 우리가 주님을 우리의 양식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음식 형태의 생명으로 제시하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그분을 양식삼아 먹음으로써 그분을 우리의 음식으로 취해야 한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57하절).
우리는 주님을 믿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요 3:16, 36).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생명이신 주님을 우리 안에 영접하는 것이다(1:12-13). 주님은 우리의 객관적인 구속주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주관적인 생명이시다. 우리에게는 이런 생명이 필요하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 우리의 문제는 일과 봉사와 예배가 아니라 먹는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먹고, 무엇을 먹으며, 또 얼마만큼 먹고 있는가? 인간의 창조 후에 하나님은 사람을 곧 생명나무 앞에 놓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나무를 그의 양식으로 삼도록 하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음식 형태의 생명으로 사람에게 나타내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하라고 요청할 의사가 전혀 없으셨다. 하나님의 의도는 단지 사람이 하나님 자신을 그의 양식으로 취하는 것, 하나님을 먹고 사는 것이었다.
우리의 관념을 행함에서 먹음으로 바꿈
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관념을 행함에서 먹음으로 바꾸시기 바란다. 단지 행하는 그리스도인만이 아닌 먹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그것은 아주 놀라울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강조하는 것은 행함과 수고이다. 기독교는 행하는 종교, 일하는 종교, 수고하는 종교로 전락하였다. 하나님의 처음 의도는 사람을 수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잔치로 누리고 먹는 것, 즉 하나님 자신을 누리게 하는 데 있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예배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4장 전체의 문맥에 따르면, 주님께서 뜻하신 것은 14절에서 주님을 생수로 마시는 것이 곧 24절에 있는 주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것이다. 당신이 주님을 생수로 마실 때 바로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당신이 주님을 더 많이 마실수록 더욱더 주님으로 채워지고, 주님은 더욱 경배를 받으실 것이다. 주님을 경배하는 최고의 방법은 주님을 마시고, 주님을 먹고, 주님을 누리고, 주님을 섭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이상 일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먹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쉬울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하지만 주님께 드리는 당신의 기도는 여전하다. 당신은 아직도 “주님, 오늘도 내가 옳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소서. 당신은 나의 약함을 아시며, 내가 얼마나 화를 쉽게 내는지 잘 아십니다. 주님, 오늘 내가 화를 내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라고 기도할지도 모른다. 이 기도는 당신이 아직도 행함의 관념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신이 행함으로부터 기꺼이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것은 ‘진짜 기적’이 될 것이다. 당신은 이상을 보아야 한다. 주님의 빛 비춤이 있을 때 당신은 즉시 “주여, 나는 행함에 속한 것은 어떤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을 양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 공과를 오십 년 이상 배워왔다. 때때로 나는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주님께 도와달라고 구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곧 내 자신을 멈추고 돌아서서 “오 주여, 내 자신을 주님께 열어 드립니다. 당신이 나의 누림이십니다.”라고 주님께 고백해야 했다.
행함에 관해서 깨끗이 잊어야 함은 알면서도 그것을 잊기가 쉽지 않다. 행함은 우리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 이것을 제거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는 인간의 창조 직후, 주님께서 사람을 주님 앞에 놓으시고 그분 자신을 음식의 형태인 생명나무로 나타내신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주님을 양식 삼고 어떻게 주님을 먹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중국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행함에 관한 것을 잊기가 매우 힘들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무엇을 하도록 하실 뜻이 전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의도는 매일 매일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양식으로 제시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처음으로 주님을 생명으로(요 1:4), 생명의 떡으로(6:35), 생수로(4:14), 생명의 호흡인 공기로(20:22) 언급했다. 그분은 생명이요 양식이요 음료수요 공기이시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한 것들이다. 당신은 주님을 생명과 양식과 물과 공기로 누려야 한다. 주님으로 인해 살고 주님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분을 호흡하고, 그분을 마시고, 그분을 먹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법
또한 주님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생명과 양식과 물과 공기이신 주님을 누리겠는가? 주님을 누리려면 피상적이 아니라 깊은 속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한다. 생각과 마음뿐 아니라 우리의 영도 열어야 한다. 당신은 주님께 매우 열려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열려 있고, 얼마나 깊이 주님께 열려 있는가? 어떤 형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그는 단지 피상적으로만 열려 있다. 그는 깊이 열려 있지 않다. 주님께 나올 때,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은 열어도 우리의 마음을 전부 열지는 않는다. 가끔 마음을 모두 연다고 할지라도 우리 속의 깊은 어떤 부분은 여전히 닫혀진 채로 있다. 우리는 깊은 속에서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한다. 주님을 누리기를 배우려면 이 한 가지 공과―우리 자신을 여는 법―를 꼭 배워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엶으로 우리 자신을 열어야 하고 마침내는 우리의 영을 엶으로써 우리 자신을 열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 우리 전 존재의 모든 깊은 부분들을 열어 놓도록 해야 한다.
나는 한때 주님을 마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나의 밖에 계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체험과 성경을 통하여, 특히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을 마시는 것이 이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을 영접한 시간부터 주님은 생수의 샘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 그 샘이 하늘에 있다거나 당신 밖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생수이신 주님은 생명 샘으로 당신 안에,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신다. 그분은 바로 당신의 영 안에 계신다. 요한복음 4장 14절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구절에서는 우리는 ‘그 속에서’라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이 샘은 ‘그 속에’, 곧 우리 속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어느 부분에 있는가? 요한복음 4장 24절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 안에서 … 예배할지니라”고 말한다(영어 회복역 참조). 요한복음 4장을 읽으면 그 내용 전체에서 당신 속에 있는 샘물인 이 생수가 바로 우리의 영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을 마시고자 한다면, 주님께서 당신 밖에 계시다가 당신 안으로 들어가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주님은 이미 당신 속에 있는 당신의 영 안에 계신다. 이제 당신은 자신을 열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께 당신의 생각과 마음과 영을 열라. 그러면 샘물이 솟아나올 것이다. 이 샘에서 샘물이 솟아나올 때 당신은 적셔지고 주님을 마시게 될 것이다.
이 샘 솟음은 외부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존재의 깊은 곳, 당신의 영 안에서 나는 것이다. 이 생명 샘은 당신 안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 샘이 당신 속에서 닫혀 있고, 폐쇄되고, 은폐되어 있고, 감금되어 있고,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들어오셔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주님께서 솟아나도록 당신이 당신 자신을 여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 속에서 솟아날 때 당신은 적셔질 것이다. 오늘의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이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주님을, 우리가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하고 섬겨야 하는 창조자 바로 그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여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고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심을 깨닫지 못했었다. 주님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생명이시고, 생명 공급이시며, 양식이시고, 물이시며, 공기이시다. 오늘 이 생명나무가 우리의 밖이 아닌 우리의 속에 있다. 우리 안에 이런 산 공급이 있으니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살아 있는 생명 공급이신 주님께 우리 자신을 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여, 내가 주님께 내 자신을 열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신을 열기란 쉽지 않다. 자신을 열려고 시도해 본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다만 어느 정도만을 열 것이다. 깊이 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힘써 여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주님께 얼마만큼 분명하게 구원을 받는가 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이 회개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깊이 주님께 자신을 열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구원받은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주님에 대한 많은 공과들을 배워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 공과―우리 존재의 깊은 속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여는 법―를 배워야 한다. 주님께 나아가 “주여, 당신께 내 자신을 열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한다면 당신은 당신 속에서 생수가 솟아 흐름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생수의 흐름이 당신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것이다.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다만 깊은 속에서부터 당신 자신을 주님께 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새롭게 주님께 나오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깊은 속을 주님께 엶으로 주님을 접촉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여, 내가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과 더 나아가서 나의 영과 나의 전 존재, 나의 깊은 속부분들을 당신께 다 열어 놓도록 도와주소서. 주여, 당신을 누릴 수 있도록 내게 당신의 풍성을 계시하시며 내 안에 당신 자신을 분배하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주님께 이렇게 자신을 연다면, 당신은 주님께서 얼마나 참되고 능력이 있고 귀한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당신에게 생명이 되실 뿐 아니라 양식(생명의 떡)과 물(생명수)과 공기(생명의 호흡)가 되신다. 이 모든 것들이 생명나무이신 주님과 관계가 있다. 당신은 어떻게 주님을 받아들이고 누리고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숨 쉬는지를 배워야 한다. 당신이 이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곧 당신 자신을 열기를 배우는 것이다.
주님께 자신을 열고 얼마간 주님과 함께 머물며 시간을 갖기를 배우라. 그 시간에는 자신의 필요와 사업과 가족과 가정의 일과 사무와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라. 다만 주님께 자신을 열고 한동안 주님을 누리라. 아무리 바쁘더라도 먹기 위해서 하루에 세 번은 앉아야 한다. 가장 건강하게 되는 실행은 오직 먹는 것에만 완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다른 일에 신경을 쓰면 그 음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소화도 잘 안 된다. 이따금 나는 식사 시간에 전화받는 것을 싫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기도를 하거나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에도 전화받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 모두는 외부의 모든 방해물들로부터 벗어나 다만 주님만을 누리기 위하여 주님께 우리의 전 존재를 열어 놓을 수 있도록 분별된 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양식과 음료와 공기이심을 인식함으로써 주님을 접촉하기를 배우라. 당신은 주님을 누려야 한다. 당신은 주님을 양식으로 먹고 주님을 마시며 주님을 호흡해들여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당신의 생활은 강건해질 것이고 정상적으로 될 것이다. 우리는 다소 비정상적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일과 행함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능동적인 반면, 주님을 먹고 누림에 있어서는 아주 피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을 흠뻑 누리지 않음을 인하여 우리가 갖는 주님의 표현은 초라하고 주님의 대표권은 빈약하다. 합당하고 적절하게 주님을 양식으로 먹고, 풍성하고도 깊게 주님을 마시며, 늘 우리의 깊은 속으로부터 주님을 호흡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표현하고 주님을 대표하는 데 있어서 매우 강할 것이다.
우리는 행함과 일과 애씀과 수고함에서 사직하고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사퇴하여 주님께로 향하고, 은퇴하여 주님께로 향해야 한다. 주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주님께 나오기를 배우라. 주님을 위한 당신의 직업과 당신의 모든 활동들에서 사직하라. 나는 한 가지 비결을 알아냈다. 그것은 모든 것에서 사직하고 주님께로 향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며, 깊게 열수록 더욱더 좋다는 것이다. 자신의 깊은 속으로부터 자신을 열어야 한다. 이 한 가지, 자신을 어떻게 여는지를 배우라. 그러면 생명으로 인하여 주님의 형상과 주님의 권위가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열 때 생명수는 당신 안에서 솟아날 길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장벽이고 장애물이고 오물인 것이다. 당신 속에서 생수의 샘이 넘쳐날 수 있도록 자신을 파내야 한다.
자신을 여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주님을 생명나무로 누리게 될 것이다. 생명나무와 더불어 생수의 흐름과 생명의 호흡인 신선한 공기가 있다. 주님께 당신 자신을 열 때 주님은 당신 속에서 솟아나실 것이다. 그때 당신은 영양을 섭취하고 적셔지고 신선해지고 속에서부터 강건케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에서뿐 아니라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전 존재에서 모두 올바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형상으로서 주님을 표현하고 이 땅 위에서 주님의 권위를 갖고 주님을 대표할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를 그분의 뜻 안으로, 곧 주님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으로 누리는 데로 인도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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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변심으로 인한 반품이나 제품 교환을 원하실 때는 먼저 연락을 주시고 제품을 한국복음서원으로 반송해 주시면, 반송 제품을 확인 후에 처리해 드립니다. (왕복 택배비는 소비자의 부담입니다)
◆환불처리시 처리 결제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환불됩니다. (카드결제는 카드취소, 현금결제는 현금환불)
◆한국복음서원은 소비자 보호법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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