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있는 인간적인 관념과 신성한 관념에 관한 이러한 요점들을 기억하기 바란다. 인간적인 관념에 따라 보면, 모든 시편은 하님을 매우 가까이 했던 경건한 사람들의 정서와 느낌과 감동들을 표현한 것이다. 신성한 관념에 따르면, 사실상 시편의 중심 사상은 매우 평이한 말로 계시된 그리스도(눅 24:44)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성인 교회이며, 이 교회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으로 예표가 되었다....
신명기의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에 속한 영역으로 들어가 그분의 풍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치시는 분이요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명기 안의 모든 말씀이 우리를 위한 생명 공급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유지되었다. 이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에베소서 1장이 몸으로 끝남을 보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의 찬양에 의해 산출되고, 이러한 찬양의 기본적인 요소는 신성한 생명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고 우리 존재 안으로 역사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찬양의 결과이고 그러한 찬양의 기본 요소는 우리 안으로 분배되고 역사된 삼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분배는 영원 과거에 시작되었고 창조와 성육신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승천을 거치셨고 이제 그분의 택한 자...
교회 생활은 사도 바울의 본(本) 안에 있는 사람들로 조성된다. 영 안에서 계시를 받는 것과 속 사람 안으로 강건케 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 바울을 뒤따라야 한다. 바울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속 사람 안에서 강하였기 때문에 그 무엇도 그를 동요(動搖)시키거나 방해할 수 없었다. 그의 전 존재가 그의 영 안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적인 어느 것도 그를 곤란케 할 수 없었다. 우리 역시 아무것도 우리를 속 사람으로부터 떠...
하나님의 경륜 안에는 단체적인 전사로 구성된 하나의 군대가 있다. 이것은 에베소서 6장에 있는 전사가 하나의 단체적인 실체임을 뜻한다. 오직 하나의 단체적인 실체의 몸으로서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전신 갑주를 입을 수 있다는 관념과 정반대된다. 에베소서 6장에 있는 갑주는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몸인 교회를 위한 것이다. 이 장이...
교회들 안에 있는 우리는 주님의 가장 큰 축복이 그분이 우리를 그 무엇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신 것임을 보아야 한다. 그분이 이것을 성취하시는 방법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우리 위에 기록하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역사되는 것과 새 예루살렘이 그분의 새 표현으로서 우리 안으로 역사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런 역사로 말미암아 이 세 이름이 우리 위에 기록될 ...
에베소서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서신은 교회의 타락이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떠나는 데서 시작됨을 계시한다. 다름 아닌 오직 사랑만이 우리를 주님과의 합당한 관계 안에서 보존시킬 수 있다. 에베소 교회는 좋은 행위들을 가졌고 주를 위해 수고했으며 고난을 견디었고 거짓 사도들을 시험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떠나고 말았다. 첫 사랑을 떠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다음 단계들의 모든 타락의 근원이다. ... 우리는 ...
교회가 금등대라고 말할 때, 우리는 교회가 실지로 일곱 등을 가진 받침대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문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오류이다.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묘사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분명히 우리 주님은 네 발과 하나의 꼬리를 가진 문자 그대로의 어린 양이 아니다. 성경의 상징물들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어린 양이란 주님에 관한 그 무엇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적이다. ... 새 예루살렘 성 역시 하나의 ...